학력사항
- 스탠퍼드 대학교
경력사항
- 팰런티어 테크놀로지 회장
- 클래리엄 캐피털 매니지먼트 회장
- 페이팔 최고경영자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이사회 의장 (2003년~ )
파운더스펀드 파트너 (2005년~ )
발라벤처 파트너 (2010년~ )
미스릴캐피탈 파트너 (2012년~ )
페이팔 공동창업 및 경영 (1998~2002)
클라리엄 캐피탈 창업 및 경영 (2002~2013)
페이스북 이사 (2004~2022)
Y Combinator 파트타임 파트너 (2015~2017)
저서
『다양성이라는 미신』 (1995년)
『제로 투 원』 (2014년)
미국의 기업인, 투자자. 페이팔 창업 성공 신화를 쓴 뒤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를 비롯한 연쇄창업에 성공하고 메타 플랫폼즈와 안두릴 인더스트리즈, 링크드인 등에 초기 투자자로 합류하는데 이어 주변인들을 정계에 진출[6]시키는 등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업계를 주도한 소위 페이팔 마피아[7]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화학공학자였다. 1살때 미국 클리블랜드로 건너갔으며, 부친을 따라서 나미비아에서 유년기을 보낸 뒤 10대 때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실리콘밸리 한복판인 포스터 시티에서 10대를 보낸 탓에, 학교에서는 항상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탓에 당시에 자유를 갈망하며, 자유주의와 반공주의 사상에 빠진 것과 더불어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판타지 및 공상과학 소설로 고단했던 나날을 견뎠다고 한다.
1989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학위를 수여받은 뒤, 1992년 로스쿨을 졸업했다. 르네 지라르와 레오 스트라우스 등의 지식인을 공부했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남부로 건너가 연방항소법원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뉴욕에서 설리번&크롬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정확히 입사 후 7개월 하고도 3일이 지난 시점에서 퇴사했다. 이후 크레디트스위스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면서, 미국 교육부 비서실의 대변인으로도 활동했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1996년에 서부로 다시 돌아왔다.
서부에 돌아온 뒤로는 인터넷과 PC의 가능성을 보고, 본인의 이름을 딴 틸 캐피탈 매니지먼트를 설립한 이후 루크 노섹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비록 노섹의 사업은 실패했으나, 그의 친구였던 맥스 레브친을 만나게 된 이후 삼인방은 필드링크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한다. 피봇 과정을 거치며 아이디어는 온라인 결제로 구체화되었고, 1998년 사명을 컨피니티로 바꾼 뒤 1999년에 출시한 서비스가 바로 페이팔이다. 미국 달러를 대체할 인터넷 화폐를 만들려는 목표를 세운 뒤 처음 선보인 제품은 PDA 결제 서비스였다. 하지만 PDA의 낮은 인지도로 인해 이메일 기반 에스크로 서비스로 피봇했다.
2000년 3월에는 겨우 네 블록 떨어진 거리의 사무실에서 비슷한 제품으로 출혈 경쟁 중이던 일론 머스크의 X.com과 전략적인 합병을 하여, 사명을 페이팔로 변경했다.[8] 대신 경영권은 머스크가 가져갔다. 하지만 합병 이후에도 개발 방식, 보안, 결제 수수료 등의 문제로 인해 내부는 와해되었고, 팀원들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은 틸은 2대 CEO로 임명되었다. 2대 CEO로서 2002년에 페이팔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데 이어, 이베이에 기업을 15억 달러라는 거금으로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지분 3.7%를 쥐고 있던 틸도 5,500만 달러를 확보하며 백만장자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틸은 실리콘밸리 연쇄 거물 창업 집단인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로 거듭나며 2000년대 업계를 주도하게 된다.
백만장자가 된 틸은 200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클라리엄 캐피탈이라는 헤지펀드를 창업하면서, 투자자로 전업에 나섰다.[9] 주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글로벌 매크로 전략을 사용했다.
9.11 테러로 인하여 안보 위기를 느낀 뒤, 사업의 기회를 포착한 틸은 2003년 5월,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라는 빅 데이터 프로세싱 업체를 창업했다. 창업 직후부터 CIA의 수주 및 투자를 유치했으며, 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기관들을 대상으로 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도와주는 업체다. 거시적인 창업 구상[10]은 틸이 진행했으나, 알렉스 카프와 스티븐 코헨이라는 적임자를 찾은 뒤에는 의장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다.[11]
2004년 6월에는 페이팔 시절 동료였던 리드 호프먼의 소개[12]로 시드 라운드에서 페이스북의 지분 7%[13]를 50만 달러에 확보하며, 페이스북의 첫 번째 외부 투자자로 참여했다.[14][15]
2005년 페이팔 공동창업자 루크 노섹, 켄 하우리 등과 함께 파운더스 펀드라는 벤처 캐피털을 설립했다.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으나, 대신 140자짜리 SNS를 얻었다."며 파운더스 펀드를 통해 세계를 바꿀만한 잠재력을 가진 기업에 선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주로 초기 단계 라운드에서 투자를 진행한다.[16]
2008년에는 클라이엄의 본사를 뉴욕으로 옮겼으며, 8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대침체 당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보아 2011년 운용자산이 4억달러 이하로 쪼그라들고 2013년 펀드를 청산시켰다.
2011년 5월, '틸 장학금'이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선발된 22세 이하의 학생은 2년간 대학을 떠난 뒤, 상금 10만 달러로 창업에 매진해야되는 조건이 붙는다. 장학금 뿐만 아니라 Y Combinator처럼 컨설팅과 인맥 소개도 지원해준다고 한다. 틸은 대학의 교육이 날이 갈수록 쓸모 없어진다고 생각하며, 학업으로 인해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의 폐해를 부정적으로 여긴다.[17]
2012년 발라 벤처를 창업했다. 파운더스 펀드와는 다르게 미국 바깥에 있는 벤처 기업들에 투자한다.
2012년 6월, 미스릴 캐피탈을 창업했다. 규모가 성숙해진 스타트업 전문으로 후기 펀딩에 참여한다.
2015년, 샘 올트먼과의 인연을 계기로 2017년까지 Y Combinator의 파트타임 파트너로 일했다.
2021년 5월, 암호화폐 거래소인 Bullish Global에 투자함을 밝혔다.# 그의 저서 제로 투 원에서 페이팔을 창업했을 때 목표가 달러 등 정부의 지배를 받는 법정 화폐를 대체할 인터넷 화폐를 만들고자 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본격적으로 실현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Bullish Global 은 블록체인 개발사인 Block.one에서 개발하는 거래소로서 EOSIO를 이용한 private blockchain에 올라가 구동되면서 거래의 주요 회계사항은 public blockchain인 EOS mainnet 에 기록함으로서 회계투명성과 성능 모두를 잡겠다는 구도이다. 이때 EOS mainnet 위에 페그된 비트코인과 USD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때문에 비트코인의 최대 단점인 전송 속도를 0.5초로 단축시키고 전송 수수료를 거의 무료 수준으로 다운 시킬 수 있다. 이는 페이팔 창업시 피터틸의 꿈이었던 탈중앙화된 화폐로 비트코인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2022년 2월, 메타의 연례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 연임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메타 이사회와 정치적인 면에서 충돌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2025년 5월, 고성능 핵연료인 HALEU를 연구하는 제너럴매터라는 기업의 이사회에 합류하며 오랜만에 신생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에 나섰다.[18]
동성애자인 동시에 열성적인 공화당 지지자이며,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성향을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드 호프먼, 샘 올트먼[19] 등의 진보 성향이 두드러지는 인물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20]
제로 투 원에서 틸은 "처음이란 아주 특이한 것이다. 모든 것의 처음은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언급하며, 제헌의회 시점에서 이미 중요 사안이 다뤄졌기에 지금은 사소한 문제만 논의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인터넷과 iPhone이 과거의 위대한 발명처럼 실질적 생산성을 개선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인간의 집중력을 해친다고 비판한다. 그는 현대 기술의 대부분이 '수평적 혁신'에 머물고 있어 사회 구조나 생산양식을 바꾸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에릭 슈미트가 기술 낙관론을 펼치자, 틸은 그를 향해 "당신은 구글의 선전장관(propoganda minister)으로 아주 잘 일하고 있다"며 조롱했고, "우리는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원했지만 140자짜리 트윗만 얻었을 뿐"이라고 냉소했다. 틸은 "우리는 물리적 세계, 즉 '물건(stuff)'의 영역에서 거의 모든 것을 금지해버렸고, 허용된 건 오직 비트(bit)의 세계뿐"이라며 구글식 기술 혁신이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 일화는 틸의 기술철학과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A][25]
피터 틸은 조지 패커의 《디 언와인딩》에서 실리콘밸리의 엘리트주의와 자유지상주의 세계관을 구현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로 천문학적 부를 축적했지만, 민주주의나 공공 제도보다 기술과 자본의 우위성을 믿는다. 그는 기술이 인간 공동체나 시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를 철저히 배격하며, 오히려 기업가적 능력주의와 자본 중심의 세계질서를 옹호한다. 이는 조지 패커가 제시한 미국 사회의 ‘해체’(Unwinding)를 정당화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신념으로 묘사된다.
호건의 소송전은 틸에게 촉매제로 작용하였고,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게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에게 발견[31]된 것을 연으로 2016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기조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32] 전당대회 기조 연설에서는 미국이 쓸데없이 중동을 침략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하며[33] 미군 철수를 외치는 트럼프가 옳다고 하였다. 틸은 기술 신봉자이기도 하여 항상 과학기술을 강조하였고 과학기술이 아닌 전쟁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여러차례 노골적 비판을 한 인물이다. 또한 평소에도 왜 국민 세금으로 금융업계에 돈을 쏟아 그들을 구제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라고도 하였다. 이를 보면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라 트럼프라는 새로운 인물, 새로운 체제를 원해서 지지했다고 봐야한다. 어렸을 적 틸은 "Make America Great Again" 구호를 외치며 오일쇼크 이후 힘든 시기 등장한 로널드 레이건의 신문 기사를 모두 스크랩 할 정도의 광팬이긴 했다. 하지만 그 이후 그는 정치적 무신론자와 같은 포지션으로 딱히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았으나 아마 트럼프에서 레이건의 모습을 봤으며 그가 실패한 구체제의 개혁을 위한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20년 미국 대선에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지지연설이나 후원을 하지 않았다.#
2022년 미국 상원의원 선거 과정에서 JD 밴스와 블레이크 마스터스에 1,000만 달러 수퍼팩 지원사격은 물론 밴스와 함께 트럼프를 직접 찾아가며 그가 오하이오에서 당선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결국 밴스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되긴 했으나, 트럼프를 뽑겠다고 말은 해놓고 후원금은 고사하고 막상 대선 기간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정치인들과의 관계을 끊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이며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한계성에 회의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인터뷰에 의하면 트럼프는 지난 상원의원 선거에서 틸의 측근인 매스터와 밴스를 지지해준 대가로 본인에게도 거액의 후원금을 챙겨줄 것을 내심 기대했으나, 틸이 전화를 통해 거절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후 트럼프가 본인의 뒷담을 깐다는 소식을 들으며 둘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틸은 트럼프가 2016년 선거에서 승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그의 정부가 가장 기본적인 영역에서조차 엉망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그를 지지한 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한다. 트럼프에게 기대한 일종의 환상이 깨진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에 답답한 밴스가 그에게 자금 후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
이후 자신은 민주주의에 흥미를 잃었으며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어느 정치인에게도 후원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으로 보아 정치에는 완전히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언론인과 팟캐스트를 했다. 대선 과정, 대선 후보, 이번 대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이유, 대선 과정에서 일론 머스크의 행보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2025년, 다시 공화당 기금 모금 행사에 85만달러를 기부하며 정치후원 활동이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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