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발행어음 잔액 50조 돌파...은행 예·적금 지위 넘본다
금리 이점 등에 업고 자금력 키우는 증권사들

증권사 발행어음 잔액이 5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사는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어음을 판매해 자금을 끌어모은 뒤 기업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한다. 은행이 예·적금을 받아 대출을 내주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은행 예·적금 금리는 3% 안팎에 머무르는 와중에 증권사 발행어음은 4%대 금리까지 제공하고 있어, 발행어음으로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예수금 절반 넘어선 발행어음 규모
5일 본지가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KB증권 등 증권사 4곳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NH투자증권은 작년 말 기준) 발행어음 잔고는 51조7000억원으로 50조원 선을 넘었다. 작년 1분기 말 발행어음 잔고가 41조6000억원이었음을 고려하면 1년도 안 돼 10조원 불어난 것이다. 100조원에 못 미치는 저축은행 79곳 예수금 잔액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증권사는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1년 이내 만기 동안 운용하고, 만기가 도달하면 미리 약정한 수익률(금리)을 붙여 돌려준다. 발행어음 종류는 수시형과 만기형, 적립형이 있다. 수시형은 언제든 자금을 넣었다가 뺄 수 있는 방식으로, 은행의 수시입출금 계좌와 비슷하다. 만기형은 투자자가 목돈을 한꺼번에 투자하고, 적립형은 매달 일정 금액을 입금하는 방식이다. 각각 은행의 정기예금, 정기적금과 비슷하다.
금리 조건은 증권사 발행어음이 은행 예·적금보다 유리하다. 현재 증권사들이 판매하는 만기형 발행어음 금리는 1년 만기 기준 연 3.05~3.2% 수준이다. 반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2.9~3.05%에 그친다. 은행 적금과 유사한 적립형 발행어음의 경우 금리가 연 4%대를 넘나든다. 예컨대 발행어음 1위 증권사인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적립형 발행어음 금리를 연 4.35%로 쳐준다. 5대 은행 1년 만기 적금 금리(연 2.6~3.55%)보다 1%포인트가량 높다.
◇모험자본 공급 수단으로도 부각
금융 당국은 증권사 발행어음을 모험자본 공급을 위한 수단으로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4월 증권사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의 50% 이상을 기업 대출이나 회사채 매입 등 기업금융 자산으로 운용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2028년까지는 25%를 기술 기업 대출 등 모험자본에 공급하도록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 작년 4분기에 키움증권·신한투자증권·하나투자증권을 신규 발행어음 사업자로 인가하면서 발행어음 시장 규모를 키웠다. 삼성증권도 발행어음 인가 절차를 밟고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 발행어음은 매력적인 카드다. 금융상품을 판매하고 대출을 중개해주는 소극적인 영역을 넘어서, 은행처럼 자금을 유치해 자체적인 투자 운용 계획을 세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은행 예·적금에서 주식시장으로의 머니무브가 가속화하면서 증권사들이 몸집을 키우는 와중에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발행어음”이라고 했다.
증권사 종합 투자 계좌(IMA) 시장이 커지는 데 따른 기대감도 크다. IMA는 증권사가 고객 자금을 모아 기업 금융에 직접 투자하고, 그 성과를 고객과 나누는 구조의 실적 배당형 상품이다. 현재는 자기자본 8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인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만 IMA를 출시하고 있는데, NH투자증권이 후발 주자로 IMA 인가 절차를 밟고 있다.
◇은행권도 3%대 고금리 특판 나서
은행권에서는 예·적금 유치에 경고등이 들어서자 금리를 높이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저축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3.07%로 집계됐다. 한 달 전 연 2.95% 수준에서 빠르게 오르는 양상이다. 영진저축은행(연 3.4%)이나 국제·바로·세람저축은행 등(연 3.35%) 3% 중반대 금리 상품도 출시됐다.
시중은행들은 최근 주식 시장 활황세를 틈타 ELD(주가연계예금) 판매를 늘리면서 자금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은 최고 연 10% 수준의 기대 수익률을 제공하는 ELD 상품을 판매하고 있고, 신한은행은 ‘SOL메이트 세이프지수연동예금’을 통해 최고 연 10% 수익률을 내걸었다.